다문화 유소년 농구 전도사  천수길씨를 아시나요

다문화 농구단을 지휘하는 천수길(가운데) 한국농구발전연구소장이 15일 서울 이태원초등학교 체육관에서 농구로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고영권기자 youngkoh@hankookilbo.com

“존엄성은 너희들 안에 있다. 스스로 그걸 꺼내주지 않는 한 아무도 꺼내갈 수 없어.”, “난 색깔을 보지 않는다.https://sportlab.or.kr/board/view.php?page=2&bdId=report&sno=1

민첩함과 기술을 본다. 넌 그걸 가졌어.”

2006년 미국에서 개봉한 ‘글로리 로드’ 영화대사의 한 토막이다. 이 작품은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1960년대 미국 텍사스주의 텍사스 웨스턴 대학농구팀 지휘봉을 잡았던 백인 던 해스키스 감독이 흑인 선수들을 데리고 1966년 미국대학농구 토너먼트 결승에서 우승한 실화를 영화화했다. 백인우월주의자로부터 질시를 받고 폭행당하는 사건 등으로 흑인 선수들은 두려움에 빠지고, “멍청한 흑인들로는 절대 우승할 수 없다”는 비아냥에도 감독은 선수들을 꿋꿋이 내보내는 신념을 지켜 결국 우승으로 세상의 편견을 깼다.

‘모든 사람은 동일하다’라는 기본 원칙을 갖고 농구로 다문화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이도 우리 사회에서 찾을 수 있다. 주인공은 한국농구연구발전소 천수길(57) 소장이다. 한국농구연구발전소는 2006년 최희암 프로농구 인천 전자랜드 전 감독, 신선우 WKBL(여자프로농구연맹) 총재, 안준호 서울삼성 전 감독 등 농구인들이 농구로 사회 공헌 활동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했다. 주요 업무는 보육원 어린이들로 이뤄진 드림팀(2006년 창단)과 다문화 농구단 글로벌 프렌즈(2012년 창단) 운영인데 드림팀은 2015년 아이들이 다니고 있던 알로이시오 초등학교가 학생 수 부족으로 문을 닫으면서 해체됐다.

천 소장은 글로벌 프렌즈를 창단할 당시 영화 ‘글로리 로드’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 또한 유색 인종을 포용하기보다 거리감을 뒀고, 다문화 가정 아이들은 집단 내에서 소외의 벽으로 몰렸다. 천 소장은 우연히 초등학교 운동장에 혼자 앉아 땅바닥에 뭔가를 끄적이는 한 어린이를 보고 다가가 물었다. “얘야, 왜 집에 안 가고 여기 있니?” 짙은 갈색 피부와 커다란 눈망울을 가진 아이는 답했다. “어차피 지금 집에 가도 아무도 없어요.” 천 소장은 다시 물었다. “그럼 친구들하고 놀아야지. 왜 혼자 흙장난을 하고 있니?” 이에 대한 답을 아이가 하지 않자 천 소장은 말했다. “나랑 농구하자. 친구들도 많이 있어.” 그렇게 글로벌 프렌즈는 첫 출발을 알렸다.

간식을 나눠주기 전 가장 즐거워하는 아이들. 고영권기자 youngkoh@hankookilbo.com

배재고와 단국대에서 선수 생활을 한 천 소장은 실업 팀에 가지 못했지만 대한농구협회 총무이사와 홍보이사로 농구와 끈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후 사업 실패와 지인에게 사기를 당하는 아픔을 겪고 힘겨운 시간을 보내다가 한국농구발전연구소 소장 직함을 받고 다시 세상으로 나왔다. 글로벌 프렌즈의 출발을 알리기 전에는 도움의 손길이 적어 어려움이 많았다. 2010년 서울 보광초등학교 다문화가족 어린이 농구교실 운영으로 시작을 했는데 운영비가 생각보다 많이 들었다. 자비를 들여 명맥을 이어가던 중 2012년 여행사 하나투어가 구원 투수로 나섰다. 그 해 6월 공식 창단식을 갖고 안정된 환경 속에 팀을 만들어갔다.

현재 글로벌 프렌즈는 맨 땅에서 농구를 했던 과거와 달리 매주 수요일 오후 이태원초등학교 체육관에서 2시간 동안 아이들이 땀방울을 흘린다. 동계 기간에는 주 1회, 하계 기간에는 수요일 체육관, 토요일 여의도 공원에서 2차례 농구를 한다. 지난 15일 오후 5시쯤 아이들이 체육관으로 뛰어 들어갔다. 피부 색과 생김새는 달랐지만 하나 같이 밝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한 뒤 농구공을 잡았다.

글로벌 프렌즈에 5주째 재능기부를 이어가고 있는 이호근 여자프로농구 삼성생명 전 감독은 “순수한 아이들과 함께 하니까 나도 즐겁다”며 “학교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발산할 수 있는 공간으로 신나게 수다도 떨고, 농구하면서 땀 흘리고 하는 자체가 보기 좋다”고 말했다. 이어 “여자 아이들은 처음에 수줍어하더니 점점 활발해지고 얼굴도 밝아진다”면서도 “(키 큰 한 여자 아이를 가리키며) 피지컬(신체)이 좋아 농구를 정식으로 시켜보고 싶긴 한데…”라고 전직 감독답게 선수에 대한 욕심을 내기도 했다.

이호근 여자 프로농구 삼성생명 전 감독이 아이들에게 재능기부로 농구를 가르치고 있다.

글로벌 프렌즈에서 농구를 하는 친구들은 총 50명 정도다. 나오는 인원은 매주 다르다. 처음에는 공개 모집을 했지만 지금은 아이들 사이에서 워낙 유명해져 친구들을 계속 데려와 따로 모집은 하지 않는다. 그래도 천 소장은 “농구를 하고 싶은 아이들에게는 언제나 문이 열려있다”며 “모두 다 똑 같은 우리 아이들인데 농구를 통해 꿈과 희망을 키우고 삶의 또 다른 활력소를 얻어갔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천 소장은 단순히 농구만을 가르치지 않는다. 아이들이 단체종목 농구를 하면서 공동체 의식을 갖고 혼자가 아닌 함께 어울리는 즐거움도 익히도록 한다. 또한 희망과 사랑을 아이들이 알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실제 농구장에 있는 아이들은 하나같이 밝았다. 특히 간식 햄버거를 나눠줄 때가 제일 행복한 시간이었다. 한 개로는 부족해 두 개씩은 가져가야 만족스러워했지만 절대 욕심은 내지 않았다.

양손에 햄버거를 쥔 여섯 살 여자 꼬마 음마주크 유라조는 기자에게 “왜 햄버거 안 드세요?” 이에 농담으로 답했다. “유라조가 두 개를 갖고 있어서요.” 유라조는 주저 없이 햄버거를 기자에게 건넸다. “아니, 농담이에요. 유라조가 먹어도 돼요.” 순수하고 나눌 줄 아는 마음이 어린 나이에도 묻어났다.

한 때 천 소장은 아이들이 시간 제약 없이 뛰어 놀 수 있는 체육관 건립을 위해 음식점 주차 관리요원을 하고, 본업으로 2년간 과일 장사도 했지만 모두 접었다. 그는 “본업에 매진하다 보니까 아이들에게 소홀히 하는 것 같았다”며 “40년간 농구를 해왔기 때문에 농구로 아이들과 호흡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한결 같이 옆을 지켜주는 천 소장을 아이들은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나이지리아 부모님을 둔 트레져 우메(이태원초 6학년)는 “선생님은 우리를 차별하지 않는 좋은 분”이라며 “여기에 와서 농구 실력도 많이 늘었다”고 밝게 웃었다. 천 소장에 따르면 우메는 한국말이 가장 유창해 팀 내 ‘동시 통역사’로 통하기도 한다. 창단한지 시간이 꽤 흘러 성인이 된 친구들도 있다. 모로코 출신 메디는 어느덧 대학생으로 천 소장과 술잔도 기울인다. 또 용산고 3학년에 재학중인 김준성은 엘리트 농구 선수의 길을 걷고 있고, 내년 서울의 한 농구 명문대 진학이 점쳐지고 있다. 이처럼 글로벌 프렌즈는 한 팀을 넘어 가족인 셈이다.

집에 돈을 가져다 주지 못해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을 늘 갖고 있지만 천 소장에게 가장 큰 걱정거리는 역시 아이들이다. 농구를 하다가 나오지 않는 친구들이 생기면 불안한 마음이 앞선다. 천 소장은 “우리 아이들은 잘못된 길로 빠질 수 있는 위험에 노출돼있다”며 “잘 나오다가 안 보이는 얘들이 있으면 걱정된다”고 했다. 다행히 아직까지 그런 친구들은 없었다.

천수길 소장 휴대폰에 붙어있는 창단 목적과 목표. 고영권기자 youngkoh@hankookilbo.com

천 소장이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초심이다. 글로벌 프렌즈 창단 목적과 목표를 잠시라도 잊지 않기 위해 휴대폰 케이스에 꼭 붙여놨다. 그는 “농구를 잘하는 어린이도 있고, 못하는 어린이도 있다”며 “소질에 따라서 다른 방향을 잡아줘 장차 우리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이 될 수 있고, 밝은 미래를 열어주자는 마음을 한시라도 잊어본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천 소장은 선행으로 스포트라이트가 자신에게 쏟아지는 것을 꺼려했다. 모든 농구인들이 관심을 보내주고 응원해준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고 공을 돌렸다. 그리고 천 감독 곁에서 농구 명문 인천 송도고에서 신기성, 김승현 등 최고 가드를 키워낸 송기화 코치가 아이들의 지도를 맡고 있다. 송 코치는 “7년째하고 있으면서 오히려 내가 아이들에게 기운을 얻어간다”고 말했다.

천 소장은 마지막에 이 말을 꼭 전해달라고 했다. “다문화 유소년 농구 팀이 처음에는 우리밖에 없었는데 네 팀이 더 생겼어요. 이게 다 우리 농구인들이 힘을 주셔서 일어난 일입니다. 항상 관심과 응원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는 한 가지 희망사항도 덧붙였다. “우리를 향한 관심이 행동으로 이어졌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

김지섭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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