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식 전문기자의 스포츠 &]체육특기자 대책 다시 세워라

[안영식 전문기자의 스포츠&]체육특기자 대책 다시 세워라

엘리트(elite)는 해당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이 있다고 인정받는 사람이다. 국내외 언론은 최근 프랑스 대통령에 당선된 에마뉘엘 마크롱(40)을 ‘정치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나폴레옹 이후 최연소 프랑스 지도자’로 표현했다. 여기서 쓰인 엘리트라는 말에 부정적인 의미는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엘리트 체육이 또 도마에 올랐다. 부정, 비리의 이미지가 흠뻑 덧씌워져. ‘정유라 이화여대 부정입학’과 관련해 교육부는 지난달 ‘학습권 보장을 위한 체육특기자 제도 개선 방안’이라는 뒷북을 쳤다.

이에 이화여대는 2019학년도부터 수시모집에서 체육특기자 전형을 아예 폐지하기로 했고, 고려대와 연세대는 2021학년도부터 체육특기자의 고교 내신과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을 최대 70%까지 반영할 예정이다. 

‘공부하는 운동선수 시스템’을 정착시키겠다는 취지에 반대할 국민은 없다. 요체는 실천이다. 그리고 개선안은 현실적으로 실천 가능해야 한다.

학칙과 규정이 없어서 문제가 발생하는 게 아니다. 선수는 물론이고 관리, 감독 책임자들이 ‘관행’이라는 미명하에 입학 및 학사관리 부정을 저질러 온 것이다.

3월 말 체육특기자가 100명 이상 재학 중인 대학 17곳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는 이를 잘 보여준다. 조사 대상인 모든 대학에서 위반이 적발됐다. 출석일수 미달, 대리시험, 3차례 학사경고자 졸업 등 체육특기생 332명, 교수 448명이 학칙을 어긴 것으로 드러났다.

엘리트 체육 집중 육성은 냉전시대의 잔재다. 올림픽 등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의 국위 선양과 이를 통한 국민 통합이 목적이었다. 우리나라도 1972년 체육특기자 제도를 도입해 그 효험을 톡톡히 보고 있다. 

대한민국(Republic of Korea) 국가 명칭으로 참가한 여름올림픽의 첫 금메달은 체육특기자 제도 실시 후 바로 다음 대회인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레슬링 양정모)에서 나왔다. 이후 한국은 올림픽 강국으로 빠르게 도약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스포츠 정책의 패러다임도 바뀌어야 한다. 그 전제조건은 학교 엘리트 체육에 대한 인식의 변화다. 근대올림픽 창설 공로자인 쿠베르탱은 “올림픽은 참가하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태극마크를 단 선수와 그 부모, 금메달 소식을 기다리는 국민들에게는 미사여구에 불과하다. 이미 눈썹 위로 올라간 눈높이를 낮추는 것은 쉽지 않다.

교육부는 ‘제2의 정유라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을 내놓으면서 “미국처럼 최저 학력에 미치지 못하는 체육특기자는 전국대회나 국제대회 참가를 제한하려 한다”고 밝혔다.

우리의 여건을 감안할 때 미국식 체육특기자 시스템을 운운하는 것은 무책임한 탁상행정이다. 우리나라와 미국의 스포츠 인프라와 인재 풀(pool)은 하늘과 땅 차이다. 공부를 병행하기 위해 착실히 등교한다고 치자. 하교 후 제대로 훈련할 수영장, 아이스링크, 골프장 등이 주변에 있는 학교가 과연 얼마나 될까. 

물론 초반에 성공했어도 운동선수로 롱런하기 위해서는 인성(人性) 함양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운동으로 ‘인생승부’를 걸겠다는 체육특기자에게 현재의 입시 위주 학과목 교육은 도움이 되지 못한다. 게다가 최저 학력의 기준과 내용도 모호하다. 

운동선수는 실전 경험을 쌓아야 기량이 발전한다. 체육특기자의 대회 출전은 일반 학생의 모의고사와 마찬가지다. 자신의 수준과 부족한 점을 체크하는 소중한 기회다. 그리고 남자선수는 대회 출전 성적이 좋아야 국군체육부대(상무)에서 병역 기간에도 기량을 유지할 수 있다. 일반 병으로 군 복무를 하는 바람에 소리 소문 없이 스러져간 선수들이 부지기수다. 

한편 교육부 방침을 철저히 따르는 학교의 팀이나 선수는 편법을 쓰는 다른 학교 팀이나 그 종목 경쟁자에게 연전연패할 것이 뻔하다. 일반 학생과 성적 경쟁도 하려면 경기력 저하는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종목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체육특기자 학부모는 사교육비까지 부담하느라 허리가 휠 것이다. 

체육특기자의 학습권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은 종국적으로 그 선수의 행복추구권, 직업선택권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정권이 바뀌었고 교육부 장관도 새로 임명될 것이다. 공청회 등을 통해 현장의 목소리를 충실히 반영해 ‘현실적으로 실천 가능한’ 체육특기자 대책이 나와야 한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솔로몬의 지혜가 절실하다.
 
안영식 전문기자 ysa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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