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운동부에서 미래의 꿈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체육 유망주들을 우린 지금껏 ‘선수’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들이 선수 이전에 ‘학생’임을 깨달은 건 최근의 일이다. 미국 이타카대 배원열 교수는 “학생과 선수를 따로 분리해 생각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는 이다(사진=엠스플뉴스 강윤기 기자)학교 운동부에서 미래의 꿈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체육 유망주들을 우린 지금껏 ‘선수’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들이 선수 이전에 ‘학생’임을 깨달은 건 최근의 일이다. 미국 이타카대 배원열 교수는 “학생과 선수를 따로 분리해 생각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는 이다(사진=엠스플뉴스 강윤기 기자)
[엠스플뉴스]
‘체육특기자의 학습권 보장’
최근 교육부가 ‘공부하는 학생선수를 양성하고, 끊이질 않는 체육특기자 입시 비리 근절을 위해 제도개선 방안을 내놨다. 최근 검찰 조사를 받은 정유라 씨의 입학·학사 특혜 의혹으로 체육특기자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여론이 퍼지자 이에 정부가 대책을 마련한 것.
교육부가 내놓은 개선안의 핵심은 ‘체육특기자라도 초‧중‧고‧대학교 시절엔 운동과 학업을 병행한다’는 것이다.
교육부 개선안에 교육 주체들의 생각은 어떨까. 교육 당국은 환영하는 편이나, 학생과 학부모 사이에선 “교육부가 현실을 너무 모른다”는 반응도 있다. 아들이 고교 축구부원인 한 부모는 “미술, 음악, 연기를 공부하는 예술계 학생들도 운동부 아이들과 처지가 비슷하다. 학업 시간과 평균 성적을 따졌을 때도 별 차이가 없다”며 “하지만, 예술계 학생들을 운동부 아이들처럼 엄격하게 대하진 않는다”고 목소릴 높였다.
그렇다면 학계 반응은 어떨까. 학계 반응 역시 제각각이다. 그 가운데 최근 들어 체육계가 주목하는 이가 있다. 바로 배원열 교수다. 이유가 있다. 배 교수가 대학 때까지 농구 선수로 뛰었던 ‘엘리트 학생선수’ 출신이기 때문이다.
배 교수는 “최근 벌어지는 논란이 안타깝기만 하다”며 “우리가 이 문제를 다룰 때 가장 핵심적으로 다뤄야할 건 학생선수의 행복이 과연 무엇이냐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1 때 처음 잡은 농구공, 그리고 7년 후… 남은 것이 없었다.
배재고 농구부 시절의 배원열(사진=배원열)
미국 뉴욕주 이타카대학(Ithaca College)에서 학생들에게 스포츠 마케팅을 가르치는 배원열 교수는 대학 때까지 프로농구 선수를 꿈꾼 엘리트 학생선수였다. 하지만, 프로구단 입단에 실패하며 꿈을 이루지 못했다.
절망에 빠진 그를 일으켜 세운 건 공부였다. 배 교수는 1999년 혼자 미국으로 떠났다. 그가 간 곳은 유타대학교(Utah University)였다. 단국대 일어과를 졸업한 배 교수는 유타대 경영학과에 입학해 다시 학부 생활을 시작했다. 유타대를 졸업한 이후엔 오하이오대(Ohio University)에서 스포츠 경영학 석사, 인디애나대(Indiana University)에서 스포츠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에서 교수로 일하며 틈날 때마다 국제스포츠재단을 돕고 있는 배 교수를 ‘엠스플뉴스’가 만났다. 학생선수의 학습권 보장과 은퇴선수들의 제2의 삶에 대한 그만의 생각을 듣기 위해서였다.
대학 때까지 프로농구 선수를 꿈꾼 엘리트 학생선수였던 것으로 안다.
맞다. 고1 때 처음 농구를 시작했다. 남들과 비교하면 상당히 늦게 농구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부터 대학 졸업 때까지 7년간 엘리트 농구선수로 뛰었다.
농구를 늦게 시작한 만큼 다른 선수들과의 경쟁에서 좀 힘들지 않았을까 싶다.
일찍 농구를 시작한 친구들에 비해 개인기, 기본기 모두 부족했다. 그래서 개인 레슨도 받고, 혼자서 연습도 많이 했다. 덕분에 당시 ‘국가대표 상비군’에 뽑혀 단국대에 체육특기자로 입학했다.
대학 생활은 어땠나. 강의엔 빠지지 않고, 참석했나.
고교 때도 그랬고, 대학 때도 거의 수업을 듣지 못했다.
기자의 고교 시절을 돌아보면 운동부원들은 항상 교실 맨 뒤에서 잠을 자거나 학교 운동장에서 뒹구는 친구들이었다. 누가 깨우려고 할 때 주변 친구들이 “쟤, 운동부인데요”하면 누구도 터치하지 않는 사람들, 그게 바로 운동부원들이었다. 배 교수도 그랬나.
나도 그랬다(웃음). 교실이나 강의실에 들어가면 공부보단 잠을 자기 일쑤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교실이나 강의실에 있다는 것에만 의미를 둔 거 같다. 창피한 이야기지만, 겨우 졸업할 정도의 학점만 받았다.
거의 강의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어떻게 학점을 받았다는 건가.
최근 들어 사회적 이슈가 됐지만, 내 학창 시절에도 운동부 학생들에게 주는 ‘패스(Pass)’란 게 있었다. 한마디로 기본 학점만 주는 건데. 학교는 그걸 주면서 운동부 학생들이 졸업하는데 지장이 없도록 했다.
지금 아이들이 향해 뛰는 곳은 반대편 그라운드가 아니라 먼 미래다. 어른들이 해야할 일은 설령 아이들이 반대편 그라운드까지 가지 못해 낙오해도 새로운 길과 미래가 있음을 알려주고, 그 새로운 길을 만들어주는 것이다(사진=엠스플뉴스 박동희 기자)
공부하지 않아도 졸업할 수 있었다는 뜻인데.
(고갤 끄덕이며) 맞다. 그때만 해도 운동부 학생들에게 누구도 공부를 강요하지 않았다. 당시의 경험을 토대로 말한다면 ‘대학 입학과 졸업은 달라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무슨 뜻인가.
체육특기자로 대학에 입학했지만, 대학에서 내 전공은 농구가 아니었다. 내 전공과는 일어일문학이었다. 그땐 체육특기자가 체육 관련 학과뿐만 아니라 법학과, 경영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일어일문학 전공자였다면 난 일본어 공부를 했어야 했다. 그러나 공부하지 않고, 오직 농구만 했다. 프로선수가 되는 게 꿈이었으니까.
꿈을 이뤘나.
아니다. 대학 다닐 땐 프로가 없었다. 졸업 뒤인 1997년 프로농구(KBL)가 생겼다. 트라이아웃(입단테스트)을 신청했지만, 프로 입단이 좌절됐다. 진짜 절망적이었다. 날 끌어주는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인생의 방향이라도 잡았을 텐데, 그런 게 전혀 없었다.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가 있었나.
트라이아웃에 실패하고,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하다 보니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그때 우연히 영화 ‘제리 맥과이어’를 봤다. 영화 속 스포츠 에이전트의 삶이 너무 멋있었다. 당시는 박찬호, 박세리 선수가 미국에서 맹활약하며 스포츠 마케팅에 대한 관심이 점점 늘어날 때였다. 영화에 감명받고서 처음엔 ‘토플이라도 공부해볼까?’하는 마음으로 교육방송 토플 강의를 녹음한 걸 들으면서 공부했다. 그러다 영어 공부에 재미를 느꼈고, 1999년 봄 미국으로 넘어가 본격적으로 공부하기로 했다.
미국 유학 준비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
왜 없었겠나. 대학 시절 학점이 4.5점 만점에 1.8점밖에 되지 않았다. 그 성적으로 갈 수 있는 대학이 어디 있었겠나, 당연히 없지(웃음). 미국 대학에 직접 편지도 써서 보내고, 절박하게 매달린 덕분에 겨우 합격했다.
운동에만 올인하던 엘리트 학생선수가 공부의 길로 들어선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운동했던 친구들의 특징이 있다. 어떤 임무와 목표가 생기면 누구보다 성실하게 그 임무와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는 것이다. 난 처음엔 공부하던 학생이었다가 고교 때부터 학생선수로 뛰기 시작했고, 대학 졸업 뒤 운동에서 한 차례 실패를 겪은 후 다시 공부하게 된 케이스다. 다시 공부한다는 게 힘들고 어려웠지만, 절박하니까 뭐든 할 수 있었다.
절박?
미국에서의 내 삶은 ‘절박’ 그 자체였다. 솔직하게 말해 난 운동에서 실패해 사회로 나온 사람이었다. 나 스스로 절박한 위기의식을 갖지 않는다면 사회에서 낙오될 게 뻔했다. 다시 꿈이 생겼으니 이번엔 정말 실패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대학 도서관을 개방하는 아침 6시부터 다음날 새벽 2시까지 도서관에 틀어박혀 계속 공부에만 매달렸다. 그러니까 결과가 나오더라.
학생선수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먼저다!
국제스포츠재단 포럼에서 열강 중인 배원열 교수(사진=국제스포츠재단)
고교야구를 예로 들어보자. 고교야구 주말리그가 2011년 3월부터 시작했으니 올해로 7년째다. 하지만, 학생선수의 부모들은 입을 모아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고 말한다. 되레 “학생선수들이 평일엔 수업과 훈련을 병행하느라 지치고, 막상 쉬어야할 주말엔 리그 경기를 치러야 한다”며 “주말리그 때문에 학생선수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처지가 됐다”고 비판한다.
조심스러운 이야기인데.
?
내 경험도 있고, 지금도 그렇지만, 한국 운동부 훈련시간이 너무 길다. 지금처럼 길면 학생선수들이 지쳐서 공부할 수가 없다. 운동 시간의 조절이 필요하다고 본다. 미국 학교 운동부는 하루 4시간 이상 훈련하지 않는다.
‘훈련 시간을 줄였을 때 학생선수들의 실력이 줄지 않을까’ 걱정하는 이가 많다.
온종일 운동하면 실력이야 향상될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근시안적인 시각일 수 있다. 공부하면서 운동해야 각 종목에 인재가 모인다.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 학생이 있다 치자. 만약 운동에만 올인하고, 공부를 완전히 포기해야 한다면 그 학생이 계속 운동을 하겠나? 그렇게 되면 유망주를 한 명 잃을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공부와 운동을 병행할 때 그 종목에 대한 이해도가 훨씬 높아진다. 무엇보다 해당 종목에서 선수로 실패해도 그 분야 종사자로 더 가치 있는 삶을 살 수도 있다.
‘제2의 정유라’를 막기 위해 최근 대학스포츠총장협의회(KUSF)에서 ‘C 제로 룰(대회 직전 2학기 평균 학점 C0 미달시 대회 출전 불가)’을 만들었다.
그뿐이 아니다. KUSF에서 운동부 훈련 시간을 줄이는 제도 또한 제안한 것으로 안다. 여기서 잠시 담론의 원점으로 돌아가 보자. 학생선수들이 ‘왜’ 공부해야 한다고 보나?
학생선수들의 신분이 기본적으로 학생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것도 한 이유가 되겠지만, 더 큰 이유가 있다.
그게 뭔가.
만일 10명의 학생선수가 프로 무대에 데뷔한다고 가정해보자. 10명이 모두 성공한다면 무조건 운동에만 전념하는 게 맞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10명 가운데 1, 2명 정도 성공할까? 이게 스포츠의 냉정한 현실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8, 9명은 어떻게 되나. 이 학생선수들을 사회에서 책임지나? 아니, 절대 아니다.
일전 어느 교수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고교 졸업 후 곧바로 프로 무대에 뛰어드는 어린 선수들을 보고 무조건 박수만 쳐선 안 된다”는 말이었다.
미국 풋볼리그(NFL)를 예로 들겠다. NFL에선 ‘고교 졸업 후 3년이 지나야 드래프트에 참가할 수 있다’는 룰이 있다. 이 제도를 두고 미국에서도 여러 시각이 있지만, 난 이게 맞다고 본다.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 쿼터백 톰 브래디(사진=gettyimages / 이매진스)
어떤 의미에서 그런가.
’20살’이라고 해도 만으론 19살 아닌가. ‘직업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조금 더 공부할 기회를 보장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고졸 선수를 지명하고서 1년 후 바로 방출한다면 그 선수의 미래를 누가 책임질 수 있겠나. 그래서 난 NFL 제도를 찬성하는 편이다.
구체적인 대안이 있나.
여러 대안이 있을 거다. 그 가운데 하나가 대학의 경우 학생선수가 관심 있는 전공을 선택할 수 있도록 기회의 여지를 주자는 것이다. 운동을 계속하면 좋겠지만, 불의의 부상으로 더는 운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고, 불가피한 사정으로 운동을 그만둘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그런 일이 생겼을 때 자신이 선택한 전공을 발판삼아 사회에 진출한다면 굳이 운동에만 매달리지 않아도 될 것이다. 실제로 운동을 그만뒀어도 특수교육과를 졸업하고서 장애인 학생들에게 체육을 가르치며 성실하게 사는 친구가 있다. 일률적으로 체육특기자라고 체육 관련 학과로만 몰아넣는 것보단 전공을 선택할 기회를 주는 것이 더 낫다고 본다.
또 다른 대안은 없을까.
음. 고교도 그렇고, 대학도 그렇고 일률적으로 수업을 듣게 하는 것보단 학생들의 수준에 맞춘 교육 커리큘럼을 만들 필요가 있다.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 기본적인 인성교육, 커뮤니케이션 수업 등 실제로 삶에 필요한 과목을 배우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물론, 현실적인 장벽이 높을 것이다. 커리큘럼을 바꾸기엔 많은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
맞는 말이다.
가장 중요한 명제는 이거다. 학생선수들이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이냐는 거다. 지도자는 상대를 이기는 법을 가르치기에 앞서 진정한 스포츠 정신이 무엇인지를 알려줘야 한다. 그게 학생선수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참 지도자’의 자세다. 아, 혹시 ‘에이스 킬러’라고 들어봤나.
에이스 킬러?
운동부에선 ‘5분 대기조’라고도 하는데, 상대 선수의 경기력 저하를 위해 그 선수의 신체에 위해를 가하도록 지시받은 선수를 ‘에이스 킬러’라고 한다. 에이스 킬러 역할을 강요받는 학생선수가 있다면 그 학생도 학생이지만, 주변 학생들이 뭘 보고 배우겠나. 승리를 위해서라면 어떤 행동이라도 용인하는 이런 풍토는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대학 진학, ‘프로 진출’이라는 특수한 환경이 이런 비극을 낳는 것일 테지만, 물불 가리지 않고 이기기만 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나. 오히려 사회에 나갔을 때 제대로 적응하기 힘들지 않겠나.
막막한 선수 은퇴 이후의 삶…할 수 있는 건 지도자뿐.
세계선수권에 출전했던 선수들이 ‘은퇴 이후 삶의 설계’를 강의한 배원열 교수와 함께 기념 촬영하는 장면(사진=국제스포츠재단)
유명 선수들과 달리 일반 선수들은 은퇴 후의 삶을 제대로 설계하기 어렵다.
맞는 말이다. 은퇴 선수들이 현재의 교육과정을 이수한 뒤 할 수 있는 직업은 지도자뿐이다. 그래서 더 교육 과정의 변화가 절실하다. 초교 입학부터 대학 졸업 때까지 일관된 교육 과정이 필요하다.
운동하는 자녀를 둔 부모의 경우 당장 아이의 진학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스무 살, 스물한 살에 인생이 끝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운동을 40, 50세까지 하는 것도 아니다. 스포츠 세계에서 상위 지명을 받은 선수 가운데 성공한 선수가 과연 얼마나 되나. 그 이후의 삶도 생각해야 한다.
메달리스트도 은퇴 이후 삶이 어렵나.
선택의 폭이 좁은 게 사실이다.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알려주겠다. KBL에서 10년 이상 뛰다 은퇴한 ‘강대협’이라는 선수가 있다. 2007년엔 ‘기량 발전상’을 받기도 했던 선수다. 2012년 은퇴 후 미국 프로농구(NBA) 하부리그인 NBDL에서 코치 생활을 하며 언어연수를 받는 소위 말해 ‘뜬구름 잡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걸 보고서 정말 안타까웠다.
그래서 어떻게 했나.
그런 상황이 너무 안타까워 “여기서 시간만 보내지 말고, 제대로 공부를 한번 해보라”고 권유했다. 나와 달리 강대협은 미국에서 알파벳부터 다시 배웠다. 처음엔 힘들어했으나, 지금은 성실하고 즐겁게 공부하고 있다. 강대협을 보면서 ‘누구나 마음먹고, 실천하면 뭐든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꼭 전달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후배 학생선수들에게 추가로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그게 뭘지 궁금하다.
시야를 넓혔으면 좋겠다. 운동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한 가지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운동을 잘하는 선수도 있고, 못 하는 선수도 있다. 다른 취미 생활을 해본다든지 다른 분야에 대해서도 배워봤으면 좋겠다.
시야를 넓힌다?
넓게 멀리 봐야 한다. 그래야 플랜 B, 플랜 C를 준비할 수 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운동실력으로 성공하는 선수도 분명 있다. 그런 선수들 외엔 인식을 바꿔야 한다. 운동 말고도 본인이 행복해질 방안을 찾아야 한다.
행복해질 방안을 찾는다라.
가장 중요한 단어다. 학생선수들이 ‘행복’해야 한다. ‘행복’을 찾아주는 일. 그것이 바로 우리 어른들, 사회, 우리 체육계가 앞장서 해야 할 일이다.
강윤기 기자 stylekoon@mbcplu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