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가 시작되자마자 아빠가 방글라데시에서 귀화한 김선아와 나이지리아에서 온 아만다가 잇따라 레이업슛을 터뜨렸다. 하지만 한동안 경기가 풀리지 않았다. ‘글로벌 프렌즈’ 송기화 코치는 “팀워크”와 “기브 앤 고”를 외치며 선수들을 독려했다. 인도에서 온 타냐가 3점슛을 넣자 환호성이 터졌다. 이어 타냐의 레이업슛이 골그물을 통과하며 점수가 크게 벌어졌다. 긴장했던 송 코치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영국인 아빠와 중국인 엄마를 둔 디라라, 나이지리아인 엄마와 미국인 아빠를 둔 이바나도 코트에 나섰다.
지난 29일 충남 아산시 이순신체육관에서 열린 다문화·유소년 ‘농구 축제’ 현장. 이날 저녁 열린 다문화팀 글로벌 프렌즈와 아산 삼성 썬더스의 여학생부 경기에서 작전시간에 벤치로 돌아온 18번 정소빈(15)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저한테 패스를 안 줘요.” 그러자 천수길 감독은 차분하게 설명했다. “패스를 잘 받을 수 있는 위치에 가 있어야 해. 뒤에 있으면 안 보이거든.” 천 감독의 설명을 들은 소빈이의 표정이 다소 누그러졌다. 소빈이의 엄마는 벨라루스 사람이고, 아빠는 한국인이다. 소빈이는 다문화 농구팀 ‘글로벌 프렌즈’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농구를 한다.
소빈이의 친구 김 파티마 쇼캇은 아빠가 인도인이고 엄마는 한국 사람이다. 얼굴도 마음도 예뻐서 팀에서 인기가 많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농구를 했으니 어느덧 6년이나 됐다. 그는 “여러 나라 아이들과 어울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양한 언어를 배우는 것도 재미있다”고 했다. 얼마 전 미국프로농구(NBA) 스타 스테픈 커리(29·골든스테이트)가 한국에 왔을 때 그를 보러 서울 장충체육관까지 찾아갈 정도로 농구광이 됐다. 올해로 5회째를 맞은 하나투어 다문화·유소년 농구대회에 참가한 그는 내년에 고등학생이 된다. 그는 “내년에도 중3이라고 속이고 나오고 싶다”고 농담을 던지며 웃음지었다.
글로벌 프렌즈 남자 선수들은 지난해까지 4년 연속 우승을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는 결승에서 ‘리틀비스트’에 2점 차로 아쉽게 졌다. 엄마·아빠가 모두 나이지리아 사람인 트레저 우메(12·서울 이태원초 6년)는 가뿐 숨을 몰아쉬며 아쉬워했다.
우메는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이 더 익숙하다. 나이지리아엔 2년 전 딱 한번 가봤지만 “낯설었다.” 그는 “나이지리아보다 한국이 더 좋다”고 했다. 우메가 한국을 좋아하게 된 것은 3년 전, 글로벌 프렌즈에서 농구를 시작하면서다. 자신처럼 다문화 가정에서 태어난 친구들끼리 어울리다 보니 “아무것도 아닌 줄 알았는데 재밌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는 “농구는 마법 같다”고 했다. “친구들과 함께 성장하고 가깝게 지낼 수 있어서”라는 부연 설명을 곁들였다.
글로벌 프렌즈는 매주 수요일 오후 5시부터 2시간 동안 서울 이태원초등학교에 모여 농구를 한다. 우메는 “수요일이 기다려진다. 남들은 ‘불금’이지만 저에겐 ‘불수’”라며 웃었다.
이번 대회는 지난 28일부터 사흘간 아산시 이순신체육관과 시민체육관, 국민체육센터 등 세 곳에서 열렸다. 2013년 다문화 어린이 농구대회로 출발해 2014년 유소년부와 2016년 여학생부에 이어 올해는 중학생부까지 신설됐다. 참가팀도 첫 대회 때 다문화 4개 팀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6개 부문 68개 팀으로, 지난해 34개 팀에 견줘 두배나 불어났다. 하나투어문화재단 이상진 디렉터는 “3일 일정으로는 참가팀을 감당하기 어려워 참가 신청을 다 받지 못할 정도였다”고 했다.
이 대회는 장애 청소년, 보육원 어린이, 다문화가정 어린이 등 소외계층에게 농구로 꿈과 희망을 주고 있는 천수길 한국농구발전연구소장의 노력과 하나투어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5년째 이어지고 있다. 특히 피부와 머리 색깔은 다르지만 한국의 언어와 정서를 가지고 있는 다문화부 경기는 해마다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올해도 다문화부 우승팀 리틀비스트와 초등학교 고학년부 우승팀 인천 전자랜드는 하나투어 후원으로 다음달 21일부터 25일까지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로 전지훈련을 떠나는 행운까지 잡았다. 천 소장은 “엘리트팀은 경기가 ‘전쟁’이지만 클럽팀은 농구를 매개로 즐거움이 샘솟는다”며 “학교팀보다 클럽팀이 많아져야 농구 저변도 넓어진다”고 했다.
아산/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사진 하나투어 제공